윈스턴 처칠
다른 뜻에 대해서는 윈스턴 처칠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처칠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처칠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 |
|
| 임기 | 1940년 5월 10일~1945년 7월 26일 |
|---|---|
|
전임: 네빌 체임벌린(제41대)
후임: 클레멘트 애틀리(제43대)
|
|
| 임기 | 1951년 10월 26일~1955년 4월 7일 |
|
전임: 클레멘트 애틀리(제43대)
후임: 앤소니 이든(제45대)
|
|
| 출생일 | 1874년 11월 30일 |
| 출생지 | |
| 사망일 | 1965년 1월 24일 (90세) |
| 사망지 | |
| 정당 | 보수당 자유당 |
| 학력 | 해로 학교 왕족 군사 아카데미 |
| 종교 | 성공회 |
| 배우자 | 클레멘타인 처칠 |
| 서명 | |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처칠 경(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KG, OM, CH, 1874년 11월 30일~1965년 1월 24일)은 영국의 정치인이며, 총리(1940~45, 1951~55)이다. 다이애나 스펜서는 그의 친척이다. 종교는 성공회(Anglican)이다.
목차 |
[편집] 생애
[편집] 가계
1874년 11월 30일에 태어났다. 그는 말버러 공작 1세 존 처칠의 후손 중 한 명이다. 그의 가문은 유명한 정치가들을 배출하여, 그의 할아버지는 처칠이 어렸을 때 아일랜드 총독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비서로 일하였다. 처칠에게는 7대 선조인 찰스 스펜서 전 영국 총리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8대 선조이기도 하다. 즉,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처칠은 같은 뿌리를 가진 친척이다.[1] 찰스 스펜서전 영국 총리의 아들 찰스 2세는 처칠의 6대조였고, 찰스 2세 스펜서의 동생 조지는 다이애나 비의 부계 7대 선조가 됐다.
그의 아버지 랜돌프 처칠(Randolph Churchil)는 재무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유명한 정치인이었고 어머니는 미국 여성이었다. 그러나 비타협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정적들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뒤 회한의 세월을 보내다가 일찍 사망한다. 당시 처칠은 사관학교에서 장교후보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처칠은 아버지의 정치적인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적들에게 타협과 유머와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편집] 사관학교 시절 그리고 보어전쟁기
라틴어 성적이 나쁜 그는 해로우 고등학교에서의 학과공부에 흥미가 없었으나 독서를 좋아한 덕분에 문학과 역사에 소질이 있었다. 결국 친척동생들과 전쟁놀이를 하면서 뛰어놀다가 다쳐서 1년간 치료받은 일을 계기로 라틴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고등학교에 옮긴 그는 학과공부에 비로소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3수끝에 샌드 허스트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소위로 보어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서 수용소생활을 한 적이 있다. 수용소에서 겨우 탈출한 처칠은 로마 가톨릭 교회 신부로 변장하여 돌아다니다가 영국사람의 도움으로 숨어지낼 수 있었다. 수단과 인디아 말란칸트에서 주민들이 영국의 식민통치에 반항하여 일으킨 항쟁을 진압하는 일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편집] 제1차 세계대전기
처칠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장관을 맡고 있었다. 처칠은 전쟁이 일어나기전부터 군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어 속도를 빠르게 향상시키는 등의 국방개혁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으나, 독일이 잠수함을 개발하는 바람에 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오스만 투르크(현재 터키 공화국)의 무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영국군을 파병한 작전도 인명과 재산피해가 커서 사실상 실패한 작전이 되었다. 작전실패에 대한 문책으로 장관직을 사퇴한 처칠은 시골에서 수채화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영관급 장교로 참전하였다. 당시 그는 유머와 복지로 군인들의 사기를 높였는데, 모든 장병들을 목욕하게 하여 만연해 있던 피부병을 치료하게 했으며, "겁먹지 말게. 전쟁은 웃으면서 하는 것이야."라고 설득하여 군인들이 전투를 벌이면서 생기는 정신적 고통인 전쟁 스트레스를 완화시켰다.[2]
[편집] 제2차 세계대전
영국 보수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보수당과 자신이 맞지 않다는 구실로 자유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가 다시 보수당에 입당하였다. 당시 보수당계 정치인들에게 처칠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후 정계에서 퇴출되었지만 다시 정치에 복귀하였다.
처칠은 한때 나치 독일이 영국을 공습할 것을 염려해 과거 공군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정계에서 무시되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진짜 영국을 공격하여 처칠의 견해가 맞다는 것이 입증되자 영국정부는 그를 다시 해군장관에 임명하였다.
이 후 네빌 체임벌린이 외교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함으로써 조지 6세의 승인으로 영국의 총리를 지냈다. 이 후 영국 본토 항공전을 막아내고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처칠 시대에 지은 벙커는 현재도 영국 지하에 남아있다.
[편집] 종전 과정
1943년에서 1945년까지 전후 유럽 문제를 놓고 연합국이 몇 차례 회담을 열었는데, 여기서 부분적으로 소련이 동유럽 국가를 병합하여 지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칠은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혐오스러운 체제를 이끄는 "악마"같은 폭군이라고 보았다.[3] 1943년 11월 22일 카이로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중국의 장제스와 함께 3국 수뇌 회담을 가졌다. 카이로 회담이 끝나자마자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처칠은 테헤란으로 장소를 옮겨 소련의 스탈린을 만났다. 테헤란 회담에서 처칠은, 영국은 폴란드가 독립 국가로서 복원되는데 지대한 관심이 있다고 말하였다.[4] 영국은 이 문제가 연합국간에 마찰의 소지가 될 것을 우려하여 폴란드 문제를 꺼내길 우려하였다.[4] 1943년 11월 28일, 미·영·소 3개국 정상회담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한국인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에 약 4년 간의 수습 기간(apprenticeship)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고, 스탈린은 이에 구두로 동의를 표하였다. [5]
[편집] 은퇴 후
1946년 3월 5일, 미국 남부 미주리 주의 작은 도시 풀턴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행한 연설에서 유럽에는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다고 주장했다.
처칠은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영어 사용 국민들간의 형제애적 단결'을 호소하였다. 1951년 보수당이 다시 집권을 잡자, 총리에 재임하였으나 1955년에 앤소니 이든에게 직을 물려주고, 정식으로 은퇴하였다. 1964년 미국 의회는 처칠에게 미국 명예시민권을 수여하였다. 1953년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편집] 주석
- ↑ Tree: Charles SPENCER, Prime Minister of the United Kingdom
- ↑ 계몽사 위인전기《처칠》/계몽사
- ↑ Miscamble, Wilson D.. 《From Roosevelt to Truman: Potsdam, Hiroshima, and the Cold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0-521-86244-2
- ↑ 가 나 Wettig, Gerhard (2008). 《Stalin and the Cold War in Europe》. Rowman & Littlefield. ISBN 0-7425-5542-9,
-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43쪽
[편집] 바깥 고리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
| 전 대 네빌 체임벌린 |
영국의 총리 1940년 - 1945년 |
후 대 클레멘트 애틀리 |
| 전 대 클레멘트 애틀리 |
영국의 총리 1951년 - 1955년 |
후 대 앤서니 이든 |
|
영국의 총리 |
||
|---|---|---|
| 대영 제국 | ||
| 영국 |
소 피트 · 애딩턴 · 소 피트 · W. 그렌빌 · 포틀랜드 · 퍼시벌 · 리버풀 · 캐닝 · 고드리치 · 웰링턴 · 그레이 · 멜버른 · 웰링턴 · 필 · 멜버른 · 필 · 러셀 · 더비 · 애버딘 · 파머스턴 · 더비 · 파머스턴 · 러셀 · 더비 · 디즈레일리 · 글래드스턴 · 디즈레일리 · 글래드스턴 · 샐리스버리 · 글래드스턴 · 샐리스버리 · 글래드스턴 · 로즈버리 · 샐리스버리 · 밸푸어 · 캠벨배너먼 · 애스퀴스 · 로이드 조지 · 보너 로 · 볼드윈 · 맥도널드 · 볼드윈 · 맥도널드 · 볼드윈 · 체임벌린 · 처칠 · 애틀리 · 처칠 · 이든 · 맥밀런 · 더글러스흄 · 윌슨 · 히스 · 윌슨 · 캘러헌 · 대처 · 메이저 · 블레어 · 브라운 · 캐머런
|
|
|
|
|---|
|
1951: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 1952: 프랑수아 모리아크 | 1953: 윈스턴 처칠 | 1954: 어니스트 헤밍웨이 | 1955: 할도르 락스네스 | 1956: 후안 라몬 히메네스 | 1957: 알베르 카뮈 | 1958: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1959: 살바토레 콰시모도 | 1960: 생존 페르스 | 1961: 이보 안드리치 | 1962: 존 스타인벡 | 1963: 요르고스 세페리스 | 1964: 장 폴 사르트르 (수상 거부) | 1965: 미하일 숄로호프 | 1966: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 / 넬리 작스 | 1967: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 1968: 가와바타 야스나리 | 1969: 사뮈엘 베케트 | 1970: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1971: 파블로 네루다 | 1972: 하인리히 뵐 | 1973: 패트릭 화이트 | 1974: 에위빈드 욘손 / 하뤼 마르틴손 | 1975: 에우제니오 몬탈레 |
| 전체 목록 | 1901년 - 1925년 | 1926년 - 1950년 | 1951년 - 1975년 | 1976년 - 2000년 | 2001년 - 2025년 |
|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 |
|
|---|---|
| 1927년 ~ 1950년 |
찰스 린드버그 (1927) · 월터 크라이슬러 (1928) · 오언 D. 영 (1929) · 모한다스 간디 (1930) · 피에르 라발 (1931)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32) · 휴 새뮤얼 존슨 (1933)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34) · 하일레 셀라시에 1세 (1935) · 월리스 심프슨 (1936) · 장제스 / 쑹메이링 (1937) · 아돌프 히틀러 (1938) · 이오시프 스탈린 (1939) · 윈스턴 처칠 (1940)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1) · 이오시프 스탈린 (1942) · 조지 마셜 (1943)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944) · 해리 S. 트루먼 (1945) · 제임스 F. 번스 (1946) · 조지 마셜 (1947) · 해리 S. 트루먼 (1948) · 윈스턴 처칠 (1949) · 미국의 병사 (1950) |
| 1951년 ~ 1975년 |
모하마드 모사데그 (1951) · 엘리자베스 2세 (1952) · 콘라트 아데나워 (1953) · 존 포스터 덜레스 (1954) · 할로우 커티스 (1955) · 헝가리의 자유 투사 (1956) · 니키타 흐루쇼프 (1957) · 샤를 드 골 (1958)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959) · 미국의 과학자: 조지 비들 / 찰스 드레이퍼 / 존 엔더스 / 도널드 글레이저 / 조슈아 레더버그 / 윌러드 리비 / 라이너스 폴링 / 에드워드 퍼셀 / 아이작 라비 / 에밀리오 세그레 / 윌리엄 쇼클리 / 에드워드 텔러 / 찰스 타운스 / 제임스 밴 앨런 / 로버트 우드워드 (1960) · 존 F. 케네디 (1961) · 교황 요한 23세 (1962) · 마틴 루서 킹 2세 (1963) · 린든 B. 존슨 (1964) ·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1965) · 25세 이하의 세대 (1966) · 린든 B. 존슨 (1967) ·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 윌리엄 앤더스 / 프랭크 보먼 / 짐 러벌 (1968) · 미국의 중산 계급 (1969) · 빌리 브란트 (1970) · 리처드 닉슨 (1971) · 헨리 키신저 / 리처드 닉슨 (1972) · 존 시리카 (1973) · 파이살 (1974) · 미국의 여성: 수전 브라운밀러 / 캐슬린 바이얼리 / 앨리슨 치크 / 질 콘웨이 / 베티 포드 / 엘라 그래소 / 칼라 힐스 / 바버라 조던 / 빌리 진 킹 / 캐럴 서턴 / 수지 샤프 / 애디 와이엇 (1975) |
| 1976년 ~ 2000년 |
지미 카터 (1976) · 안와르 사다트 (1977) · 덩샤오핑 (1978) · 루홀라 호메이니 (1979) · 로널드 레이건 (1980) · 레흐 바웬사 (1981) · 컴퓨터 (1982) · 로널드 레이건 / 유리 안드로포프 (1983) · 피터 위버로스 (1984) · 덩샤오핑 (1985) · 코라손 아키노 (1986) · 미하일 고르바초프 (1987) · 위기에 처한 지구 (1988) · 미하일 고르바초프 (1989) · 조지 H. W. 부시 (1990) · 테드 터너 (1991) · 빌 클린턴 (1992) · 평화수호자: 야세르 아라파트 /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 넬슨 만델라 / 이츠하크 라빈 (1993)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4) · 뉴트 깅리치 (1995) · 데이비드 호 (1996) · 앤디 그로브 (1997) · 빌 클린턴 / 케네스 스타 (1998) · 제프 베저스 (1999) · 조지 W. 부시 (2000) |
| 2001년 ~ 현재 | |